• 최종편집 2024-04-19(금)
 
  • 당신들은 그동안 과연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했습니까?

지난 주부터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와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유가족들에게 판결금의 일부를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는 기사를 연일 내보내고 있습니다. 마치 겉으로는 정의를 위해 일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유가족들에게 뒷돈을 강요했다는 내용의 악의적인 기사였습니다.

 

그러나 이 기사들은 일부 내용을 제외하면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사의 의도 또한 매우 악의적입니다. 저는‘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을 시민들과 함께 조직해 2016년까지 운영위원으로 활동한 사람으로서 보수언론의 이 같은 악의적 행태를 강력히 규탄합니다.

 

양금덕 할머니 등 원고 5명은 201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소송의 대리인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소속 변호사들이며,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전신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2009년 창립)은 지원단체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금덕 할머니 등 원고 5명은 소송 대리인 및 소송 지원단체인 ‘시민모임’과 다음과 같은 내용의 약정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1. 위임인들은 위 사건과 관련하여 손해배상금, 위자료, 합의금 등 그 명칭을 불문하고 피고로부터 실제로 지급받은 돈 중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제 피해자 인권 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사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게 교부한다.

 

2.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위임인들로부터 지급받은 돈을 위 1항에서 정한 대로 사용하여야 하고, 위임인들이 생존해있는 동안 매년 1회 그 구체적인 사용 내용을 위임인들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약정서’에 적시된 그대로, 약정금은 법률 대리인의 수임료나 성공보수가 아닙니다. 약정금은 누군가의 수고에 대한 ‘보답’이나 ‘답례’가 아니며, 사용처도 ‘일제 피해자 인권 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사업’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단 1원도 어느 개인이나 특정 사익을 위해 사용할 수 없는 금액입니다. 약정서의 문구를 한 번만이라도 자세히 읽어보고 그동안 시민모임과 민변 변호사들이 어떻게 노력해왔는지 관심 있게 지켜봤다면 그런 편파적인 기사는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 인지하지 못했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했을 때, 시민모임과 민변 변호사들은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지금까지 헌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1992년 일본 법정에서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시작한 후, 2013년 11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원고 일부승소(배상판결), 그리고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라는 역사적인 성과를 얻어 내기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그분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드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와 언론은 철저하게 외면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했습니다.

 

‘일제 강제징용' 문제를 지금처럼 전국민적 관심사로 만드는 데는, 대한민국 정부와 고위 관료, 거대 언론의 노력이 아닌, 깨어있는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와 응원으로 가능했습니다.

 

소송 대리인으로 참여해서 오랜 기간 무료 변론으로 어르신들의 입이 되어 주신 민변 변호사님들이 보통 변호사들처럼 일반 사건 수임을 하고 수임료를 받았더라면 이런 비난을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사실 지역에 있는 작은 시민단체가 국가보조금 지원 없이 재정적으로 자립하고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해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2009년 이후 지금까지 시민모임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일제강제징용’ 문제를 전 국가적인 관심사로 이끌어낼 수 있었던 데는, 만사 제쳐두고 내 일처럼 나서는 900여 명의 후원회원님들의 힘이 컸습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 대한민국 정부와 거대 언론은 철저하게 무관심, 무대응으로 일관했고 때로는 방해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랬던 대한민국 정부와 언론이 이제 와서 시민모임과 민변 변호사들을 마치 피해자분들의 보상금을 가로채서 사익을 챙기기 위한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고 피해자들과 지원단체, 소송변호인단 간의 관계를 갈라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보수 언론에 묻겠습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어르신들께서 자신들의 ‘한’을 풀어달라며,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의 진정어린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을 때, 당신들은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국회의원들에게 묻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당신들이 그렇게 당당합니까? 그렇게 당신들이 강제징용 피해자 어르신들을 위한다면, 현재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계류 중인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안 (이하 근로정신대 피해자지원법)”을 즉각 통과시켜야 합니다.

 

법안 발의 후 2년 가까이 국민의 힘에서 법안 심사마저 차일피일 미뤄온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살아 계신 분들도 90을 넘어 다들 투병생활을 하고 계시는데, 지금이라도 대한민국 정부가 그분들의 최소한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당연할텐데 왜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안 심사마저 차일피일 2년째 미루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놓고도 지난 14년간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해 헌신해온 시민단체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할 수 있습니까?

   

대한민국 정부와 일부 언론이 혹시라도 윤석열정부의 ‘대일굴종·굴욕외교’를 물타기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면, 즉각 중단하십시오!!

 

더이상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분들의 삶을 욕보이지 말고, 시민모임과 민변 그리고 피해자 및 유가족들을 갈라치기 하는 비열한 행위를 즉각 중단해주기를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특히, 언론인 여러분들께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지금이라도 언론인으로서 자긍심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생존해 계신 강제징용 피해자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사실관계에 입각한 기사를 작성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시민모임이 어떤 목적을 가진 단체인지, 그리고 2009년 이후 어떤 활동들을 해왔는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알아봤더라면, 이렇게 편파적이고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는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시민모임은 피해자분들의 생계 지원이나 복지사업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가 아니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과 역사 정의 실현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그 영역은 ‘대한민국 정부’가 해야할 영역입니다. 기자님들은 시민모임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왜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그들의 존엄한 삶을 위한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해오지 않았는지 물으셔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철저하게 외면해온 일을 지역에 있는 상근자 두 명의 작은 시민단체가 깨어있는 다수의 시민들과 함께 혼신의 노력을 해오면서 소중한 성과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언론이 해야할 일은, 이제라도 그 성과들을 바탕으로,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의 진정한 사과와 함께 명예회복, 배상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평생 ‘한’을 안고 살아온 강제징용 피해자 분들 앞에 대한민국 정부와 언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예의이자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2023. 05. 26.

 

국회의원 윤 영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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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대한민국 정부, 국민의힘, 보수언론에게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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